"좋은 품질의 식재료…사고, 먹고, 배우자"

입력 2022-09-29 17:33   수정 2022-10-07 16:41


적당히 꼬릿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향이 코를 자극한다. 갖은 색과 모양의 파스타를 뽑아내는 생면 기계가 드르륵 돌아간다. 폭신한 치아바타 하나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한 덩이를 사서 계산하곤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주문한다. 마침내 시금치와 치즈가 가득찬 라비올리가 입 속에 들어온다.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는 이탈리(Eataly)에선 이 모든 게 한 공간에서 이뤄진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까지 나의 오감을 모두 깨우는 곳. 그로서란트다.
“이곳이 이탈리아다”

그로서란트는 식재료(grocery)와 음식점(restaurant)이 합쳐진 말이다. 다양한 식재료를 직접 눈으로 보고 냄새 맡고 만져보며 구매할 수 있고, 매장에서 파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공존하는 장소다. 온라인 쇼핑으로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 오프라인 매장만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로서란트 체인인 이탈리는 2007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탄생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16개국에 매장 40여 곳을 운영 중이다. 이탈리 창립자인 오스카 파리네는 “좋은 품질의 식재료를 사고, 먹고, 배우자”고 외친다.

한국에도 이탈리가 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과 경기 성남시 현대백화점 판교점 두 곳이다. 이탈리아에서 온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는 “고향이 그리우면 이탈리에 간다”고 했다. 오일, 조미료, 와인, 파스타면 등 이탈리아산 식재료가 가득 차 있어서다.

미식가들 사이에선 한국의 이탈리 레스토랑 맛이 뉴욕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식당 자리는 언제나 ‘풀 부킹’이다. 다만, 매장이 고급화돼 있어 시끌벅적한 시장 느낌의 해외 이탈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더현대서울 이탈리는 레스토랑과 그로서리가 분리돼 있어 정통 그로서란트와는 차이가 있다.

그로서리와 레스토랑이 결합된 그로서란트를 온전히 경험하고 싶다면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마침 지난 28일 매장을 리뉴얼 개장해 그로서리가 매장 한가운데로 들어오고 와인바도 생겼다. 취급 품목은 예전보다 더 다양해졌다.
정육점과 스테이크하우스의 결합

사실 한국인에게 그로서란트는 매우 친숙한 외식 문화다. 노량진 수산시장이야말로 거대한 그로서란트다. 가게에서 살아 있는 생선을 사들고 인근 식당에 가면 바로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다. 대게를 골라가면 먹기 좋게 쪄준다. 마지막 게딱지 볶음밥은 화룡점정이다.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은 어떤가. 정육점과 식당의 찰떡같은 컬래버레이션(협업)을 자랑한다. 눈으로 직접 등심, 안심 등 고기 상태를 살펴보며 구입을 할 수 있고 구매 즉시 식당이 안내된다. 1인당 6000원씩 상차림비를 내면 숯불에 반찬까지 제공된다.

최근에는 스테이크하우스와 정육점이 결합된 그로서란트도 생겨났다. 서울 신사동에 있는 ‘커스텀잇’은 최고 등급의 한우 스테이크를 취급하는 저녁 코스 20만원대의 파인 다이닝이지만, 고기와 반찬을 파는 그로서리가 공존하고 있다. 심지어 동네 주부들 사이에선 한우 장조림, 한우 미역국 ‘반찬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정용한 여덟끼니 대표는 “상위 1%의 특정 고객만 초프리미엄 한우를 먹을 것이 아니라, 일반 소비자도 좋은 원물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 그로서란트 형태를 구상했다”고 전했다.
특별한 食문화 찾는 2030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그로서란트는 점점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서울 청담동 애니오케이션은 카페와 델리, 그로서리가 합쳐진 공간이다. 그로서란트보다는 편하고 가벼운 ‘그로서릿(Grocery+eat)’이라고 불러달라는 게 애니오케이션의 주문이다. 베이글과 샌드위치 전문점으로 알려졌지만 수제잼, 올리브 절임, 와인 등 그로서리 라인업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남동 골목에 있는 퍼햅스투데이는 비건 메뉴가 많은 그로서란트다. 샌드위치에 발라먹는 유기농 양파잼, 바질과 마늘이 들어간 소금, 레몬청 소금, 네추럴와인에 졸인 씨겨자 등 흥미로운 식재료가 많다. 식당 음식은 이 재료들로 만든다. 홈메이드 젤라토는 식당에서 먹을 수도 있고, 사갈 수도 있다.

애니오케이션이나 퍼햅스투데이를 찾는 고객은 주로 2030세대다. 20대 대학생 김주민 씨에게 그로서란트를 찾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맛집 탐방만 하면 좀 식상해요. 이젠 셰프의 식재료를 직접 갖고 싶어요. 집에서도 요리를 따라 해볼 겁니다. 특별하잖아요.”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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